사랑, 거대함 등 우리 내면의 욕망은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던 저 멀리 있다. 미끄러지고, 빠져나가고, 결국은 녹이 슬어 시든다. 영화 <철의 꿈 >은 거대한 유조선을 만드는 사람들, 철을 녹이는 사람들, 사랑을 좇는 사람들을 통해 대서사와 개인의 관계를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다. 건축가 김광수와 영화감독 박경근은 조선소와 제철소의 압도적인 규모에서 느껴지는 강박과 공포 그리고 매혹에 대해, 그리고 그 어떤 것을 염원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에 대해, 그 만날 수 없음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박경근 영화, 비디오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감독/미디어 아티스트. 그의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철의 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로마아시아영화제, 대만다큐영화제 등에서 수상했고, 뉴욕의 MoMA와 사르쟈 비엔날레 등에서 상영, 전시되었다. 2010년 <청계천 메들리 >로 알려진 그는 현대미술과 영화의 영역을 넘나드는 젊은 예술가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광수 건축가 김광수는 ‘studio_K_works’의 대표로, ‘집담공간 커튼홀CURTAINHALL’을 이태원에서 공동 운영하고 있다.
김광수: 영화 <철의 꿈>은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호평하길래 봤습니다. 집에서 봤음에도 처음부터 엔딩크레딧까지 매우 몰입해서 봤어요. 중간에 끊지도 않았고요. 음악도 매우 다종다양하게 쓰셔서 인상적이더라고요. 제작은 얼마나 걸렸나요?
박경근: 촬영은 1년 반, 편집까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생업을 하면서 해야 하니까요.
김광수: 생업이 따로 있나요?
박경근: 알바요. (웃음) 홍보영상도 만들고 강의도 했어요.
김광수: 영화 매체만을 고집하시는 건 아니죠?
박경근: 네, 설치와 사진도 합니다.
김광수: 플라잉시티가 청계천 관련 작업을 할 때에 리서치를 같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박경근: 제가 원래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래픽 작업을 같이 하다가 영상을 해보겠다고 하면서 같이 하게 됐는데, 당시 사무실이 청계천 입정동에 있었고, 출퇴근하며 매일 촬영을 해서 <청계천 메들 >를 만들었죠.
김광수: 원래 청계천에 관심이 있었나요?
박경근: 아니요. 어릴 때도 목동에 살았고, 여섯 살 이후로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을 땐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배우려고 플라잉시티를 따라다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여섯 살 때 처음 해외에 나갔다가 다시 4학년 때 들어왔고, 3년 뒤 다시 나가고, 중학교 때 1년 와 있다가, 이후에 계속 외국에 있었어요. 약 10년 전 방학 때 오면 고가가 철거되기 전에 쫓아다닌 기억이 있어서 청계천을 알긴 했죠. 어릴 때 게임 때문에 용산 쪽엔 많이 갔어요. 청계천에 대한 애정이 있으셨나요?
김광수: 많았죠. 저는 중학생 때 백판이나 전기부품 사려고 거기 많이 갔어요. 조금 무섭긴 했어도 어둠의 별천지(?) 같았으니까요. 도시 맥락도 미로나 쥐굴 같아 마치 억압된 무의식이 서식하는 곳 같은 느낌이랄까.
감각과 욕망, 한국 남자의 정체성
김광수 쇠에 대해서 뭔가 집착이라면 집착이랄까. 페티시인가요? 매력인가요 공포감인가요?
박경근: 쇠 자체보다는 쇠가 주는 느낌 혹은 감정 같아요. 매혹과 공포 모두 섞여 있는데. <청계천 메들리 >를 찍고 나서 편집을 하려고 1년 동안 고생을 했는데, 당시 드는 생각이, ‘어차피 내가 청계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아니다. 청계천을 보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였어요. 그럼 그 감정은 무얼까 했는데, 어릴 때부터 꾸었던 반복되는 꿈 때문이었어요. 쇠와 철판이 나오고 그것들이 조여오는 강박과 공포와 매혹, 보고 있으면 홀리는 것과 가위눌리는 것과 같은 징글징글하고 메스꺼운 느낌이 편집을 하면서 기억이 났어요. 아마도 내가 쇠를 보고 느끼는 것이 한국에서 내가 살면서 느끼는 강박이 아닐까 했고요. 영상에 나오는 분들이 아버지뻘이시잖아요. 제가 제 아버지에게 느끼는 것들, 가령 강하고 거칠고 접근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그렇지만 녹슬기 쉽고 약한 면들이 공존하는데, 이런 느낌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김광수: <철의 꿈 >을 보고 신기했던 게, 쇠, 신, 연인, 고래, 이 모든 것이 서로 무관할 것 같지만 하나의 것으로 묶이며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그게 본인의 감각적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반문하는 사유의 과정 속에서 일견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본인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워진 것인지 궁금하네요.
박경근: 순서로 따지면 직감과 감각이 먼저인 것 같아요. 고래와 배는 모양이나 스케일이 감각적으로 비슷하잖아요. 그런 느낌에서 출발해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보면서 감각을 확장시킨 거죠. 감각과 생각이 계속 교차하다가 결국 지배하는 것은 이미지, 즉 감각이에요. 감각이 생각에 ‘이렇게 하자’고 강요하거든요.
김광수: 영화에서 연인이 종교에 귀의하여 헤어지게 된 바로 다음이 이야기의 시작점이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결국 영화를 채우는 것은 쇠와 신, 배와 고래 등이죠. 그 과정에서 계속 종교음악이나 신화적 음악이 흐르는데, 저는 전체적으로 ‘믿음’이나 ‘숭고함’ 혹은 종교적 감각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쇠와 배가 ‘건설시대’라는, 이제는 믿을 수 없어 떠나보내야 하는 과거의 믿음과 숭고함을 드러낸다면, 신과 암각화의 고래는 무언가 우리가 계속 붙잡고 찾아보아야 할 새로운, 하지만 고대로부터 유유히 흐르는 어떤 새 사랑의 막연한 단초처럼 다가옵니다. 아무리 감각적 이미지로 드러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이것들과 함께하는 ‘끈’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불신과 광신, 우울과 숭고함이 교차하는데, 저는 보는 내내 허먼 멜빌의 ‘백경’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 저)라는 책에서 잘 서술하고 있는데, 지나친 신념과 의지로 거대한 백경과 함께 물에 잠기는 광기 어린 에이헤브 선장과 결정장애자 같은 결국 미쳐버린 흑인 소년 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박경근: 제가 생각이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항상 촬영을 할 때는 ‘생각 없이’ 하려고 노력해요. 끌리는 대로 찍는 식이고. 철학적으로 깊게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에요. 촬영을 모두 끝내고 편집을 할 때 발신자의 입장에서는 감각을 생각으로 정리하지만, 받는 사람은 거꾸로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를 지속해가는 ‘끈’이 무얼까를 저도 차후에 생각해봤는데, 내가 작품을 왜 하나를 생각해보면, 뭔가 거창한 게 아니라 결국은 다 여자를 꼬시려고 만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웃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운동을 잘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제가 그림을 그리면 여자아이들이 관심을 보였거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예술작품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맞아요. 영화도 남성성이 매우 세잖아요. 섹슈얼한 아우라도 있고요. 내레이션의 사랑 이야기도 그렇고요. 내가 아닌 여성과 공감하고 사랑하려는 시도가 있는 거예요. 결국 나의 욕망에 집중하고 밀어붙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절로 한국 남자로서의 정체성, 남성성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신뢰의 상실
김광수: 신을 비롯해 거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리적으로도 거대한 것이 주 소재입니다. 큰 이야기를 끌고 나아가며 몰입시키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쉬운 일이 아닌데, 진중하게 몰입이 됩니다. 오히려 서사가 거의 없거나 구조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떡하니 신을 등장시키게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경근: 공장에 처음 갔을 때 규모와 반복 때문에 완전히 압도됐어요. 시각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지러우면서 주변이 꽉 쪼여지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공장의 철제 프레임 반복이 있고, 크레인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보며 이 공간은 비어있는데 채워져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레인을 끄는 심이 있는 부분은 비어있고. 반대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철심을 박을 때 인간이 이것을 정해서 박은 게 아니라, 원래 이 지점에 무언가 있는데 인간이 철심 하나를 박은 것처럼 보였어요. 그게 감동적이더라고요. 그것은 사이즈 때문이 아니라 스케일 때문인 것이죠. 커져 버린 배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공간만 찍으면 느낌이 안 오는데 사람을 함께 찍으니 대비가 더 커진 거죠. ‘뿅 가는’ 느낌이 종교에서의 접신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자기가 아닌 게 되는 지점.
김광수: 정신을 쏙 빼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체험이 일회성이 아닌 다음 날의 일상과 관계하는 것. 말하자면 신성한 체험이 종교시대 이후로는 아마 근대 예술이 수행했던 역할인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술이나 사건이 현대의 매체환경을 경유하며 평평해지고 체험이 가벼워지니까, 오히려 조선소 같은 거대 현실이 비현실적 몰입과 기억에 저장되는 경험을 남기는 것 같아요. 더구나 이 체험을 이미 믿을 것이 못 되는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서 작가가 현대에 복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제철소나 조선소가 현재를 찍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과거의 기억으로 다가와요. 이와 대비되며, 의지하거나 믿을 것이 없는, 실연의 상태와 비슷한 현재의 우울 혹은 망연자실함(?)이 영화 전반에 있는 것 같고요. 이야기 전반이 ‘신뢰의 상실’이라는 현상. 사랑에 대한 욕망이 있고 필요성도 느끼지만, 그게 되지 않는. 무엇인가 큰 존재를 믿고 의탁하고 싶지만 그것도 되지 않는. 혹은 작은 것에서도 의미의 충실성이 경험되지 않는, 어찌 보면 그렇게 되어버린 헛도는 가치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무의미가 아닌 유의미를 찾으려는 절실함이 느껴집니다. 하여튼 근과거의 큰 가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가치가 저하되면서 내일을 잃어버린 상황에 대한 영화인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신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영화에서 실마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거든요.
박경근: 없었죠.
김광수: 영화가 방향이나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징후에 가깝겠지요. 저는 <철의 꿈 >이 현대사회의 불운한 징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이지도 않아요. 과거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라기보단 오히려 담담하고, 심지어는 믿음과 지향성이 있었던 시대에 대한 일말의 향수가 있는 것도 같았어요.
박경근 :아마 제 개인적인 배경, 즉 아버지와 저의 관계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야기를 작게 해보자면) 아버지 고향이 경남 거창의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시골이에요. 매년 그곳으로 성묘를 가는데, 어느 날 보니 경상과 전라를 잇는 국도에 16차선인가 하는 고속도로가 생긴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아름다운 걸 다 망쳐놨다’며 욕을 했는데, 아버지께선 ‘왜, 시원하고 좋구만!’ 하시는 거죠. 거기에 매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 물었더니, 아버지는 어릴 때 거창시로 유학생활을 하면서 짚신이 아까워 맨발로 8시간을 걸어 다녔는데, 3분 만에 가는 게 얼마나 시원하냐는 거죠. 아름다움과 흉측함의 기준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내 감각과 전혀 맞지 않으니 제가 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러한 감수성을 가진 분과는 같은 물체를 두고 같은 언어, 같은 단어를 써도 소통이 불가하겠구나 한 거죠. 우리 아버지는 고등학생 때까지 전깃불 없이 사셨다고 해요. 농경사회 속 아버지와 비디오게임과 외국에서 자란 저는 너무 다른 거죠. 아버지가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고, 너는 ‘외교관의 아들’인데 말이 통하겠냐 하셨어요. 그렇게 대화를 하자며 3시간을 이야기했지만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절대 소통할 수 없다’를 인정하고 나서 냉정하게 선을 그어야 했는데, 그랬더니 역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요. 대화에는 향수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철의 꿈 >에 나오는 여성노동자 이야기도 안 믿어요. 월 소득 800만 원인 분이 옛날이 더 좋았다고 하는데, 그 감성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광수: 과거에 대한 동경은 없나요?
박경근: 없어요.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도, 그렇다고 ‘지금이 좋아’라는 말도 안 믿어요. 저는 ‘지금 이 지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저 시대에 이런 느낌을 믿었겠지’ 하고 상상만 하는데, 이것도 제 생각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거든요. 진짜 제대로 보려면, 투시감과 입체감을 두려면 거리를 두어야 해요. 그래서 한국 들어오고 군대 다녀온 이후 배운 것은, 절대 진심을 얘기하지 말고, 소통하려 하지 말고, 그냥 ‘네, 네’ 하자. (웃음) 그래서 깨달은 게 절대 소통은 안 된다는 걸 가정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부모님도 직장상사 대하듯이 하니까 관계가 좋아졌고요.
과거를 바라보는 것도 그런 거리감을 두지 않으면 내 삶이 어려워지니까요. 내 기준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그래야 하는 거죠. 제 삶에서 답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싸울 게 많더라고요. 주변에서 내버려두질 않아요. 자신과의 투쟁이 더 어려워요. 사람들이 개인적인 책임감과 행동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지낸다면 뭔가 바뀌겠죠.
과거와의 마감
김광수: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굉장히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메라가 거리를 두지도 않아 조망한다는 느낌보다는, 계속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느꼈거든요.
박경근: 매체가 가진 속성 같아요. 비디오나 사진은 이미지잖아요. 초반 촬영 때는 진짜 몰입해서 ‘우와’하는 느낌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편집 땐 다 쓸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1년 정도 찍다 보니 이 공장의 구조와 앵글이 체내화가 되고 막판이 되니 지겹기도 해서 빨리 찍자 하니, 거꾸로 이미지가 몰입이 되는 효과가 나오더라고요. 항상 발신과 수신이 거울처럼 거꾸로 작용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감정이 몰입되었을 때 찍은 건 그 감정이 안 나왔는데, 그걸 차단하니까 나오더라는 거죠.
김광수: 그게 악순환일 수도 있는데. 들어가고 밀어내고 하는 것의 반복이 마치 아버지와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어요.
박경근: 맞아요, 비슷해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시각이 찢어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공장의 3D는 나를 감싸고 있는데, 이를 영상의 2D에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또 관건이었어요. 그래서 머리를 써야죠. 크레인의 등장을 어떻게 보여주고 카메라 앵글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김광수: 과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대해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증오도 있잖아요. 거리를 두어야 해결이 되는, 그런데 실제 직면하면 어렵고. 영화를 제가 봤을 때 느낀 것은 <철의 꿈 >에서 특히 많이 느꼈는데, 대상에 대한 공포와 함께 애정을 많이 느꼈어요. <철의 꿈>에서는 장례식, 즉 웅장한 한 시절의 믿음과 사랑의 세계를 마감하는 장례식 같은 입장도 있었던 한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느낌도 받았거든요. 비물질화 되어 좀처럼 존재감이 없는 이 시대에 비하여 당시에는 중심이 있었고 숭고함까지 있었던 그 시절로 말이죠. 또한 철에 대한 매료가 개인적으로 어떤 동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말씀하신 아버지와의 관계같이 단순히 구시대에 대한 거리두기 식 배려가 아니라, 그 이전의 이전까지 거슬러 상고시대로, 태초로 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느꼈거든요. 여하튼 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장례식이라는 감각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경근: 아마도 제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보면, 외국에서는 디자인을 했고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내 생각을 얘기했을 뿐인데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울분이 생겨서 작가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문화충격에 의해 작가의식이 만들어졌달까요. 그러면서 결국은 아마 지금까지의 작업이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텐데, 지금까지는 제 정체성을 (유치하지만) 땅속 뿌리를 찾듯 했는데, 그다음에는 가볍게 가려고요.
나는 누구인가
김광수 해외에서 오래 사셨으니 정체성 혼란을 느낄 수 있죠. 그런데 한국에서 평생 살아도 정체성의 위기를 늘상 겪잖아요.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궁금한 것이죠. 예전에는 대체로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디로 갈지만 지향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미래가 안 그려지는 시대이고, 나는 뭐지? 하게 되는 거. 요즘의 레트로 열풍도 이를 반영한다고 봐요. 존재감을 느끼는 수단이 과거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철의 꿈>이 대중적으로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상당한 흡입력을 만들어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희의 질문이기도 하고요. 70, 80년대 경제성장률 10%이던 시절에는 가시적으로 모든 게 바뀌고 있었고, 진창 같지만 그래도 어딘가로 간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박경근: 비슷한 맥락에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예전에는 사람들의 의식이 밖으로 향했는데, 이제는 안으로 향해요. 그러다 보니 자기의 역사와 과거를 생각하는데, 안으로 향한다는 게 결국은 ‘개인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1인 주거 문화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답이 과거에 있진 않죠. 그 과거도 지금 보는 과거이지 실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불만인 것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아련함, 향수를 저는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지금을 살고 있고, 지금의 문제들이 시급한데 과거를 붙잡고 있으면 산뜻하지 못해요. <국제시장 > 영화도 봤는데, 안 울 수 없었어요. 특히 이산가족 장면 보며 욕하면서 울었어요. 그런데 다 보고 나오면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문화적으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전통 쪽은 모두 우리 것에는 무언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없다고 생각해야지 새로운 게 나온다고 봐요. 음악의 경우 퓨전국악처럼 전통의 현대화는 잃어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시도인데, 그건 컨템포러리가 아니고 오리지널리티도 없어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한옥 열풍, 한식의 세계화도 우리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없다고 가정해야 문화적으로 새로운 게 나온다고 보거든요. 어차피 서양을 무시할 수 없다면, 전통을 현대화, 세계화하는 게 아니고 서양 것을 내 방식대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봐요.
김광수: 차라리 전통 악기를 가지고 우리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연주하면 오히려 무언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경근: 국악 쪽에서 해석한 것 중 유일한 가능성을 김수철 씨의 <기타 산조 >에서 봤어요. 가야금을 버리고 내용은 기타, 구조는 산조를 살렸어요. 이는 비단 우리 문제만이 아니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봐요.
김광수: 그러면 영화에서 암각화를 끌어들인 계기는 뭐죠?
박경근: 그림으로서 끌린 거예요. 정체성이 아니예요. 이미지로서 그게 모양이 비슷하고 울산이라는 지역도 마침 맞았어요. 그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거대 서사예요. 나팔을 불고 있으면 고래가 나타나고, 배를 타고 사냥하러 나가고, 작살로 잡는 동안 무당이 굿을 하고, 그물과 같은 도구들도 보이고, 저기에서는 고래를 잡고, 한편에서는 다른 동물을 잡고.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대서사가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개인과 대서사
김광수: 대서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언젠가 대단한 날이 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지? 지금은 모두 해체됐지만, 갈증을 느끼는 것 같거든요. 대서사가 과거에는 기승전결을 거치며 미래를 지향했는데, 현재에는 거꾸로 가는 징후가 있는 것 같아서요. 말하자면 반추 혹은 결전승기 식으로 오리진을 찾는. 소설도 근대 시기에 대서사가 횡횡했지만, 어느 시점엔가 내면을 지향하고 근원을 파헤치는… 급기야 예술가의 세계는 심오한 내면의 세계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잖아요? 물론 이것도 저물어가는 시대가 된 것 같지만.
박경근: 지금은 디지털미디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날로그면 순서가 생겨요. 시간을 통해야만 (예를 들어 필름으로 찍었다면 모든 필름을 쭉 다 봐야만, 시간을 통해야만 볼 수 있는데) 디지털은 1시간 분량도 3초 만에 스크롤로 액세스가 가능해요. 소스도 언제든 뽑을 수 있고요. 그리고 그게 동시에 벌어지죠. 그건 감각적으로 여기를 봤다가 다음 장면을 볼 때 끊어지잖아요. 디지털은 충돌이라 할 수 없고, 서로 다른 게 붙어있고 동시에 일어나요. 저도 풋티지를 썸네일로 뽑아 벽에 다 붙였는데, 거기서 신의 관점으로 보면서 (웃음) 이미지로서 편집을 하는 거죠. 그런 방식이 디지털적인 방식이 아닐까 해요.
김광수: 영화가 현재 시점임에도 고고학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암각화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요. 과거의 시간을 거쳐 현재로 왔다는 게 아니라, 과거, 심지어는 상고시대 까지도 현재에 동시간적으로 있는 듯한.
박경근: 시간이 화살처럼 가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동시에 있는 것, 과거 현재가 ‘같이’ 가는 게 재미있어요. 얼마 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갔는데, 거기에서 천국, 지옥, 연옥 이미지를 봤는데 3채널 비디오처럼 내러티브가 동시에 벌어져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관점이에요. 주관적인 관점이요. 개인이 보는 대서사이니 여기에 나타난 내용보다 누가 이 내용을 얘기하고 보느냐가 중요한데, 아시아에서는 주어가 항상 빠져있기 때문에 이게 특히 주목할 만한 거거든요. 개인의 시대인데 개인이 없는 것처럼 얘기한단 말이죠. 그러면 어디서 누가 보는 건지 방향을 잃는 거예요.
김광수: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아직 멀었죠. 개인주의 체험 없이 다음 상황으로 이행하는 게 덜 고통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해요.
박경근: 제가 무라카미 류의 『마지막 가족』을 읽고 있는데, 그가 계속 얘기하는 게 ‘개인의 성립’이거든요. 우리가 봤을 때 일본은 더 개인적이잖아요. 그런데 무라카미 류는 일본에서 더 개인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계속 얘기해요. 그들이 우리보다 40년 앞선다고 생각하면 우린 아직도 먼 거죠. 구조적으로도요.
김광수: 개인주의를 이야기하다 보니,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주의’가 생각나요. 한 개인 안에 여러 정체성이 있다는 거예요. ‘인디비주얼individual’이 ‘나뉠 수 없음’이잖아요. 근대사회가 만든 자아중심주의 혹은 불변의 자아실체가 아니고, 나누어질 수 있는 자아 즉, 분인(分人, dividual)이라는 거죠. 정체성이 나뉜 건지, 아예 없는 건지.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실제 그렇고요. 뿐만 아니라, 일관된 자아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면 더없는 고통이 되거나 넌센스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박경근: 맞아요. 서양에서 말하는 ‘나(individual, me)’와 동양의 ‘나(我)’는 또 다르잖아요.
김광수: 니체의 관점주의도 결국은 다양한 관점만큼 다양한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건데, 하나로 수렴되는 투시도의 관점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죠. 서양은 ‘나’가 관점의 주체인데 동양은 재밌게도 상대방과 얘기할 때도 내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얘기하잖아요. 분인적 관점주의랄까요.
다시 돌아가서, 우리에게 정말 불변의 정체성이 있긴 한 것인지 질문을 일단 던져봐야 할 것 같고, 더 나아가 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왜 정체성을 질문하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건설적인 것 같습니다.
박경근: 자의식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는 사람도 많잖아요.
김광수: 건축가의 손을 신의 손에 비유하던 때가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런 이미지는 통용되지 않죠. 예술가도 마찬가지잖아요. 미켈란젤로라는 한 사람이 당시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었을까요. 근대사회가 재조명을 하니까 그런 거죠. 예술이야말로 개인의 일관된 관점주의를 들이댈 수 있는 주된 분야인데, 지금도 그러한가 생각해보면 양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초지일관의 형식과 관점을 고수하는 경우를 보면 오히려 의아한 느낌이 듭니다. 여튼 이러나 저러나 견디기 힘든 것인데, 인간이 신이되려는 혹은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는, 지나간 한 시대의 의지의 잔여물에서 허우적데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박경근: 저는 그건 방향이 다른 것 같아요. 서양이 가는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은 입장과 순서가 달라요. 서양에서는 개인이 너무 과도해서 해체하고 관계 지향적으로 간다면, (제가 10년 전에 읽은 것도 ‘관계미학’이었고 서양에서는 일관성이 있는데),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거꾸로예요. 그들이 미술에서 관계미학을 얘기할 때 한국사회 자체가 이미 관계의 미학이에요.
김광수: 미학이 아니죠. 지옥이죠. (웃음)
박경근: 그렇죠. 관계의 지옥이죠. 우리에겐 학연, 지연 등 촘촘한 망이 있잖아요. 거꾸로 개인을 확립하는 게 더 프로그레시브해요. 그래서 관점과 개인을 얘기한 건데, 촘촘한 망 같은 걸 다 잘라내야만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어요. 용기가 필요한 거죠. 현대미술에서도 무언가 서양의 것을 할 때 오리지널리티나 돌파구, 어느 것도 안 생기죠. 그래서 역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광수: 많이 공감합니다.
박경근: 삶에서 나오지도 않는 잡지에서 본 것을, 외국어를 가져와서 애를 써서 그렇거든요.
김광수: 언어가 중요하죠. 삶과 달라붙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어요. 그러니 정상적 소통이 힘들고요. 이게 우리나라의 큰 딜레마예요. 그러니 왜곡될 수밖에 없겠죠.
박경근: 뉴욕에 있었을 때 한국 갤러리들이 몇 들어왔는데, 첼시에 가보면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다른 뉴욕에 있는 작가 것과 비교하면 뭔가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저조차도 한국인으로서 자유롭지 않아서 제가 부자연스러운 걸 느껴요. 감정과 감정표현 훈련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내는데, 훈련된 목소리에요. 더 신기한 건 대만과 일본도 우리와 똑같아요.
김광수: 그에 대한 해법이 확실한 개인화를 거치면 되느냐, 꼭 과연 그런가, 서양이 그러했다고 우리도 꼭 그러면 되는 걸까, 싶은 거죠.
박경근: 개인주의로 탄탄하게 가도 서양식으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한 생각 자체가 말씀하셨던 ‘분인’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다른 식의 자아가 돼요. 어쨌든 자아라는 건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건데, 자아가 있다는 걸 상정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혼돈만 남을 뿐이거든요.
김광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혹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 선각자를 낳거나 파시즘을 낳기도 하는 거겠죠.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로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제가 갖는 우려는, 중심이 없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어 ‘무엇이 우리 혹은 나의 정체성이다’라고 정의하며 행위하는 순간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불신과 광신 혹은 나르시시즘의 딜레마 즉 소통의 막힘이나 차단이 생긴다는 건데, 소설 백경의 에이헤브 선장과 혹은 밑도 끝도 없는 바다에서 아무것으로도 자신을 정의할 수 없어서 미쳐버린 핍이라는 소년이 다시 생각나네요.
박경근: 저도 결국 제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바닷가에 모래알 같은 점 하나가 저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인으로서 내 욕망을 억압하는 요소들이 잠재의식에 많아서 제 입장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욕심과 욕망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이야기가 많았는데, 소장님과 이야기 하면서 많이 배웠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